젠더혁신
[Gendered Innovation]과학 기술 연구·개발(R&D) 전 과정에 성별 특성을 반영한 과학 기술 연구라고 볼 수있다.
젠더 혁신은 남녀 간 생물학적·생리학적 변수는 물론 사회·문화적 변수도 함께 고려하는 개념이다. 과학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에 성 분석과 젠더 분석을 활용해 편향성 없는 연구로 과학 기술의 적정성을 높인다는 목적이다.
‘네이처’ 등 학술지, 성별 특성 고려 요구
젠더 혁신은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론다 시빙어 교수가 처음 시작했다. 시빙어 교수는 과학 연구에서 남녀 간 생리학적 차이가 고려되지 않았다고 처음 지적했다. 2009년 시빙어 교수 연구팀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성 분석과 젠더 분석을 활용한 연구 사례를 발굴, 연구자들이 이를 실천하는 데 도움을 줬다. 여기서 개발한 연구 원칙이 △연구 우선순위 및 결과 재검토 △개념 및 이론 재검토 △연구 문제 개발과 성별 분석 △성·젠더 요소의 상호 작용 분석 등이다. 이후 젠더 혁신은 과학 기술 연구의 국제적 새로운 어젠다로 부상했다.
젠더 혁신의 대표적 성과는 의생명 분야다. 미국 정부가 1997~2000년 사이 미국에서 시판된 의약품에 대한 부작용을 추적한 결과 퇴출된 10개 의약품 가운데 8개가 여성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조사 결과 신약 개발 과정에서 수컷을 대상으로 동물 실험을 하고 임상 시험에서도 여성은 소수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후 남녀의 부작용이 다른 약물이 10개가 아니라 600여 개가 된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연구에서의 성별 특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젠더 혁신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개념은 아니다. 남성이 많이 앓는 협심증 등 심혈관 질환은 여성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성별 특성을 고려해 진단과 치료 방법을 차별화했다. 반대로 골다공증은 중년 여성의 질병으로 인식돼 남성의 진단이 잘 안 됐다. 젠더 혁신 연구 결과 남성에게 빈번한 골다공증성 골반 골절에 진단 방법과 치료법이 개발됐다. 대장암 위치나 자폐증, 비만도 남녀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직까지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연구 결과를 남녀 모두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의 실내 적정 온도 기준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는 데다 실험실 장비나 작업장의 안전 장치, 휴대전화 크기도 평균적 남성을 기준으로 해 여성이나 체격이 작은 남성은 불편을 감수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같은 연구 성과가 밝혀지자 전 세계 주요 학술지도 성별 특성 변수(SABV : Sex As a Biological Variable)를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세계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2019년 창간 150주년 기념호에서 과학 기술계에 불고 있는 젠더 혁신을 집중 조명한 데 이어 게재 원고에 동물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별 특성 등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사육 시설 환경과 축산법이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 역시 포함돼야 한다. 엘스비어 출판사의 의학 학술지 ‘란셋’도 임상 시험의 모든 단계에서 여성 참가자 수를 확대하고 연구 자료를 성별로 분석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성별 특성을 고려하는 편집 정책을 표방한 전문 학술지의 피인용지수(임팩트 팩터)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국책 연구 기관과 연구비 지원 단체도 젠더 혁신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연구비 집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미국 국립보건원은 2016년부터 연구에 사용되는 척추동물과 사람 연구에서 생물학적 변수로 성별을 고려해야 한다는 규정을 추가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저널도 양성을 포함한 임상 시험과 방역학 연구 분석을 진행하도록 권고한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은 농업 부문 개발 사업에 지원할 때 젠더 요소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EU 최대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 ‘호라이즌 2020’은 젠더 혁신과 관련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젠더 혁신과 관련한 지원 과제 비율이 13.8%에서 36.2%로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어 2021년 출범한 ‘호라이즌 유럽’도 예외로 제시된 경우 외에는 전체 연구에서 젠더 요소를 포함하도록 했다.
과학기술계에 부는 ‘젠더 혁신’ 바람
한국에서는 2013년부터 젠더 혁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현 여성기술인육성재단) 초대 소장이던 이혜숙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이 이를 처음 소개했다. 이 소장은 “과학 기술의 연구·개발(R&D) 전 과정에서 성별 특성을 반영하는 젠더 혁신 연구야말로 남녀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연구 혁신”이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에는 성별 특성이 반영된 연구개발성과평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도 연구에 성별 특성을 고려하라는 권고가 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2018년부터 연구에 성별 특성을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과학단체총연합회도 2019년부터 회원 학회에 학술지 발간 지원을 신청할 때 성별 특성을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뇌질환 연구에서 젠더 혁신 연구 성과가 나타나 주목받았다. 김은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장팀은 2019년 자폐증이 남자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이유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자폐증은 남자에게 5배 정도 빈도가 높은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이 자폐증을 일으키도록 유전자를 결핍시킨 생쥐를 관찰해 보니 수컷만 신경 전달 균형이 무너진 반면 암컷은 균형 시스템을 지키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대표적 젠더 혁신 연구 성과로 꼽힌다.
과학기술계에 부는 ‘젠더 혁신’ 바람
자율주행차·AI 연구에서도 핵심 이슈
최근 젠더 혁신은 의생명 분야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한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중요해지고 있다. 예컨대 영국 디지털 헬스 기업인 바빌론이 개발한 건강 챗봇은 완전히 동일한 건강 조건에 성별만 다르게 입력했는데도 여성은 우울증, 남성은 심혈관 질환으로 전혀 다르게 진단해 논란이 됐다. 남성은 48시간 안에 신속한 병원 방문을 추천한 반면 여성은 그렇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도 제기됐다.
자동차 사고 테스트에도 남성과 여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998~2015년 정면 충돌 사고를 분석한 미국 버지니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 운전자는 치명적 부상이 남성보다 73% 더 높았다. 평균 치수의 남성을 기준으로 한 자동차 충돌 실험용 인형(더미)만 사용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2019년에도 치명적 충돌의 80%가 발생하는 전면·측면 테스트에 남성 더미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해 6월 충돌 테스트에서 여성의 신체 특성을 반영한 더미 활용을 의무화하는 ‘페어 크래시 테스트 액트(Fair Crash Test Act)’ 법안이 발의된 배경이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젠더 혁신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의 초기 사용자가 남성 중심이어서 서비스 개발 방향이나 안전성 연구,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투입하는 데이터 등도 남성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완성차 업체와 테크 기업, 주요 정부들이 운전자 개입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레벨4 상용화 시점을 앞당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녀의 성별 특성을 고려한 안전 표준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얼굴 식별도 문제다. 2019년 12월 19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컴퓨터에서 백인 남성의 얼굴을 판별할 때 오류율이 0.3%에 불과한 데 비해 유색 여성의 오류율은 34%에 달한다. 남성이 기술을 만들고 남성에게 우선 테스트해 시장에 나온 기술과 서비스 등에 결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 AI가 30·40대 백인 중심으로 학습했다가 흑인 사진을 ‘고릴라’라고 인식한 것은 잘 알려진 데이터 편향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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