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사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중앙은행(central bank)이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전자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digital currency).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와 달리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며 현금처럼 가치변동이 거의 없다.
액면가격이 정해져 있고 기존 법정통화와 1대 1교환도 가능하기 때문에 '법정 디지털화폐'라고도 불린다.

또한, 중앙은행 입장에서 실물을 발행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누가 돈을 들고 있는지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빅 브러더' 논란도 크다.

*CBDC의 기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전 미국 예일대 교수가 1985년 처음 제안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휴대가 불편한 지폐와 동전을 폐기하고 그 대신 온라인 예금계좌를 각 개인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디지털 장부 블록체인과 세계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관련 기술을 서술한 논문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CBDC 발행 및 운영 시스템 관련 기술이 한 단계 도약했다.

CBDC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하며 기존 통화와 가치가 연동된다. 지폐·동전 없이 전자장부에 숫자로만 오가는 거래의 수단이다. 통상 스마트폰을 통해 중앙은행이 개발한 전자지갑 앱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일반 은행 계좌와 연동되지 않는 동시에 인터넷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간편결제 시스템과 다르다.

CBDC는 디지털 장부인 블록체인으로 관리된다. 그런 만큼 화폐 위조 위험은 사라진다. 지폐와 동전에 비해 금융거래 안정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또 중앙은행은 CBDC를 개인과 기업에 직접 나눠줄 때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CBDC가 사용되면 한국은 연간 1000억원에 이르는 현금 유통과 거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은행은 CBDC를 통해 개인의 금융 거래를 거의 빠짐없이 확인할 수도 있다. 한편에서 암시장을 줄이거나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CBDC가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이른바 ‘빅브러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중앙은행 등이 CBDC를 매개로 개인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국민경제 활동 전반을 감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CBDC와 결제시스템이 몰리는 중앙은행이 사이버 테러 공격을 받으면 자칫 금융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CBDC가 확산되면 노인 등 정보기술(IT)에 어두운 계층이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금융산업적으론 은행의 자금 조달 기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개인이 CBDC를 전자지갑에 직접 보관하는 만큼 요구불예금 등 은행권 수시입출금 및 단기예금 계좌를 사용할 유인이 줄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기능이 약해지면 은행의 대출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대출금리가 높아지고 신용도가 높은 개인 및 기업만 대출을 받게 되는 상황이 심화할 수 있다.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의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CBDC 도입 현황

현재, 스웨덴, 중국 등의 국가는 CBDC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2020년 2월부터 디지털화폐인 'e-크로나'를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릿스방크는 향후 1년간 e-크로나 사용을 실험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사용될지 연구할 계획이다. 캐나다, 영국, 유럽연합(EU), 스위스 등의 중앙은행도 2020년 초부터 CBDC 연구 그룹을 구성했다. 가까운 시일 안에 CBDC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한 미국도 연구를 강화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일본도 2021년부터 초기 단계의 디지털화폐 실험에 나서기로 했다.


이중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발행을 주관하는 디지털화폐(CBDC)를 실제 상거래에 사용하는 대규모 실험을 진행중이다. 2020년 10월 12일 중국 선전시는 추첨을 거쳐 시민 5만 명에게 200위안(약 3만4000원)씩 나눠줬다. 인민은행 디지털화폐 앱을 통해서다. 5만 명은 같은달 18일까지 3389개 상업시설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인민은행 디지털화폐로 결제했다.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이뤄진 결제는 6만3000건에 이르렀다.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대규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 이뤄진 것이다. 중국이 다른 나라에 앞서 CBDC에 뛰어든 것은 디지털 경제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위안화 국제화의 목적도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올 들어선 미국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둘러싸고 중국 압박 카드로 홍콩의 달러페그제 폐지 검토까지 언급하자 ‘달러 패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CBDC 사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내부적으로 ‘디지털 달러화’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함께 CBDC 개발에 들어갔다. 더 이상 미적거리다간 세계 무역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조바심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도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체 ‘디지털 유로화’ 발행 준비에 나섰고, 영국 일본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등 5개국 중앙은행과 연구그룹을 구성했다.

中 "달러 패권 벗어나자"…선전 이어 내달 쑤저우서 테스트
EU "내년 디지털 유로 도입 결정"…韓銀, TF 해체 후 뒤늦게 재구성
중국이 연말 대규모 세일 행사인 쌍십이절(12월 12일)을 맞아 장쑤성 쑤저우 시민들에게 추첨을 통해 ‘디지털 위안화’를 무료로 나눠주기로 했다. 쑤저우의 마트와 백화점에는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할 수 있는 QR코드 스캐너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중국은 지난달 선전 시민 5만 명에게 인민은행 디지털화폐를 나눠준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대규모 실험에 나섰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디지털 위안화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결제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크다. 동시에 알리바바 등 빅테크가 장악한 디지털 결제시장을 정부가 회수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

“달러 패권에서 탈피하겠다”
글로벌 경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100여 년간 미국 중심으로 운영됐고 국가 간 거래는 달러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중국은 세계 경제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실물 달러’의 기반이 워낙 공고한 만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위안화는 이란 베네수엘라 등 미국의 제재를 받는 국가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일대일로(一帶一路) 국가와의 거래에서 제한적으로만 쓰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디지털 위안화를 확대하는 것이다. 당장은 중국에서 먼저 쓰고, 이후 외국과의 거래로 확장하겠다는 계산이다. 팡싱하이 중국 증권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위안화 국제화는 외부 금융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결제시장을 장악한 위챗페이 알리페이를 견제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금융사고 발생 시 수습 문제부터 활용 가치가 큰 방대한 결제 데이터를 민간 기업이 주도적으로 확보한다는 점 등에서 중국 정부는 상당한 부담을 받고 있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이전에 디지털 위안화를 법정화폐로 사용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정진 KB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3년 안에 중국 유통 화폐의 30~50% 정도가 디지털 위안화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견제 나선 미국과 유럽
미국은 표면적으로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난달 19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달러 패권 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달러를 믿고 사용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법, 강력하고 투명한 기관, 개방적 자본시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하지만 디지털화폐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함께 내놨다. 그는 “디지털화폐는 더 빠르면서 비용이 덜 드는 국제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미 보스턴연방준비은행이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협업해 가상 디지털화폐 개발에 들어가는 등 자체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화폐라는 시대적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유럽 일본도 디지털화폐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달 12일 “디지털 유로 발행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디지털 유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도 밝혔다. 비(非)유로존 국가인 스웨덴 중앙은행은 지난 2월 디지털화폐인 e크로나를 시범 테스트하고, 내년 도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도 올 7월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에 관한 기본방향’을 통해 디지털화폐 검토를 공식화했다.

한참 뒤처진 한국은행
한국은행도 디지털화폐 실험 사업자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내년에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실험 유통에 나설 계획이다. 한은은 2018년 1월 디지털화폐 연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1년 만인 지난해 1월 해체했다. 올 2월 관련 팀을 재구성해 작업을 시작했다. TF를 꾸렸다 폐지하면서 상대적으로 디지털화폐 개발 속도가 더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은의 디지털화폐 연구 속도와 추진 계획은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았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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