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 법안
[Inflation Reduction Act, IRA]미국이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약 48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다. 2022년 8월 7일 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고 같은 달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발효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대기업 증세 등으로 확보한 7400억달러(약 910조원)의 재원을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대에 쓰는 것이 뼈대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더 나은 재건 법안’(BBB 법안)이란 명칭으로 추진한 3조5000억달러 규모 지출 예산이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예산 규모를 줄이고 이름을 인플레이션 법안으로 바꾼 것이다.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2023년부터 전기차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민주당은 이 법안이 중간선거 판도를 바꾸는 데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P통신은 “이 법안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 조건이 까다로워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법안은 2023년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하게 했다. 이 비율은 1년마다 10%포인트씩 올라가 2027년 이후엔 80% 비율을 맞춰야 한다. 양극재와 음극재 같은 배터리 소재도 2024년부터 일정 비율 이상 북미산으로 채우도록 했다. 양극재와 음극재에 쓰이는 일부 소재는 중국 비중이 90% 이상이다.
사실상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는 것으로 한국산 전기차에 불리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전기차는 모두 한국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25년 조지아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전기차 보조금 제도가 갑자기 바뀌는 과정에서 여러 혼란이 예상됨에 따라 법안에는 미 재무장관이 구체적인 보조금 지급 지침을 정하도록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주요 사항은 에너지 보안 및 기후 대응 투자, 최저 법인세율 15% 적용, 처방약 가격 개혁, 의료보험(ACA) 보조금 연장 등이 포함됐다.
이번 법안의 전체 예산 규모 4,330억 달러 중 3,690억 달러, 즉 전체 예산의 86%에 달하는 규모가 에너지 보안과 기후 대응에 집행된다.
나머지 처방약 인하를 위한 전국민건강보험 관련 규모로 640억 달러가 책정됐다.
이런 대규모 예산 투입을 위해서 자금 조달 방안으로 대기업에 대한 15% 최저 법인세율 적용이 추가됐다.
대기업 증세로 기후 대응과 서민 의료혜택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법안 이름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인 이유는 에너지와 의약품 물가를 잡겠다는 목표 때문이다.
존 전통 에너지 이외에도 신재생 에너지로 에너지 구도를 다각화하면서 석유나 가스 등 기존 에너지의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방약 가격을 인하하는 것도 의료 복지인 동시에 물가를 잡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물가 잡기에 의구심을 던지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버넌 스미스 등 미국 경제학자 230여명은 인플레 감축법안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서명을 제시하기도 했다.
<>수혜 업종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법안 도입으로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을 촉진하는 방안이 포함되면서 테슬라나 GM 등 전기차 업체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기업들이 세금 공제가 확대되면서 직접적인 수혜가 예상된다.
그러면서 테슬라, GM을 포함해서 도요타, 포드 등 미국 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에는 호재가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살 때 7,500달러의 세금을 공제해주는 혜택이 기존에는 20만대까지 주어졌다.
테슬라와 GM 등 20만대 이상 판매한 경우에는 이런 혜택을 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판매 차량 수에 관계 없이 세금 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만 이 법안이 제한하고 있는 범위가 있다. 밴이나 SUV, 픽업트럭의 경우 8만 달러 미만인 차량에 해당하고 세단과 쿠페 등은 5만 5천달러 미만일 때만 가능하다.
테슬라의 경우 혜택 대상 금액보다 비싼 제품 라인도 있지만 일론 머스크가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 테슬라 차량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한 만큼 이후에 가격 인하 조치가 나오면 수혜 대상 차량은 더 많아질 수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 생산되면서 배터리 역시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움직임에 따라 미국 배터리 업종도 수혜가 기대된다.
<>국내업체에 미치는 영향
증권가에선 풍력 분야의 수혜가 더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법안 통과 후 세제 혜택이 2050년으로 연장되면 풍력 발전량은 이때까지 올해 대비 23.8% 증가할 전망이다. 태양광 발전량 증가율(12.8%)보다 배 정도 큰 것이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풍력업체 실적은 2022년 2분기를 저점으로 2023년부터 실적 기대가 본격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태양광업체 중에선 한화솔루션이 혜택을 크게 볼 전망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1.7GW 규모 태양광 모듈 공장을 갖고 있다”며 “2023년 2분기 1.4GW 규모 공장을 추가로 가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차전지 업체도 낙수 효과가 기대된다. 전기차 매수자에게 7500달러, 중고 전기차 매수자에게 4000달러 규모의 세액공제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법안에 담겨서다. 세액공제 적용 대상에서 전기차 누적 판매량 20만 대 이상인 업체의 차종은 제외한다는 조항이 빠졌다.
국내에선 LG에너지솔루션이 최대 수혜 업체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테슬라, GM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고 미국에서 GM, 스텔란티스와 합작 공장을 짓고 있어서다.
최근 GM과 대규모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LG화학도 낙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큰 타격 입는 국산 전기차와 IRA의 문제점>
IRA의 핵심은 북미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대당 7500달러)을 지급하는 것이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그러나 한국 차만 유탄을 맞게 됐다. 당초 입법 취지는 무색해지고, 한국만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의 지위(판매량 2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또 IRA의 보조금 차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보조금 등에서 상대국을 불리하게 대우할 수 없다는 ‘내국인 대우 의무규정’에 명백히 위배된다.
IRA의 문제점은 또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양국 관계가 안보·경제 동맹에서 기술·가치까지 공유하는 ‘글로벌 전략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선언한 게 바로 엊그제다. 한국 기업들이 이에 호응해 자동차와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거기엔 현대자동차(14조원)도 포함돼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따로 만나 “생큐”를 연발하며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뒤돌아서자마자 곧바로 현대차를 골탕 먹이는 입법을 강행한 것이다.
미국이 왜 그러는지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반등을 위해 학자금 대출 탕감같은 ‘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IRA 같은 설익은 부실 입법도 나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해결 방안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상계관세 부과 방안 등은 시간만 오래 걸리고 실효성도 크지 않다. 그보다는 한국이 올해 대미 최대 투자국이자, 미국에 꼭 필요한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제조기술을 가진 핵심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적극 어필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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