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자살
[physician-assisted suicide]의사조력자살이란 독극물(경구약 또는 주사제) 처방은 의사가 하되, 이를 복용 또는 투약하는 행위는 환자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의사가 독극물을 직접 투약하는 안락사와 다르지만, 환자 자신의 의지로 삶을 종결한다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같다.
`조력존엄사'라고도 한다.
2022년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의사조력자살(의사 도움을 받는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의 합법화다.
2016년 제정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시행에 들어가면서 의미 없는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보류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현행법은 임종기 환자에게만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망 없기는 마찬가지인 말기 환자나 식물 상태 환자 등에겐 이런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말기 환자도 자신의 결정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하자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지난 6월 15일 국회에 발의된 배경이다.
법안에선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표기하고 있다.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는 미국 몇몇 주의 법률에서 존엄사(Death with Dignity)란 용어를 빌려와 법안 명칭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과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으로 바꿨다. 거부감을 줄이려는 뜻이긴 하나, 엄연히 자살인데 존엄사라고 부르니 헷갈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죽을 자유’ 어디까지 허용할 건가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인간에게 죽음을 앞당길 자유가 과연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신념에 기반해 결정하는 것은 기본권으로서 자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회복 가능성이 없는 단계인 말기 환자들로 대상을 좁히면 최소한의 존엄한 죽음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미국의 1심과 항소심 재판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한 몇몇 주의 법률이 개인의 자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다만, 연방대법원은 아직 위헌이라고 판결하지 않고 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제1조에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며,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두고 조력자살 찬성자들은 의미 없는 생명 지속을 단축해서라도 환자의 존엄을 지켜주는 게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자들은 생명을 단축하는 일은 건전한 사회윤리에 반하는 것이고, 환자의 이익도 사회공익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단,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 단축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시기상조론 vs 국민 공감대 확산
다음으로 사회적 공론화가 덜 됐다는 주장과 이미 무르익었다는 반론이 맞선다. 대한의사협회는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는 측면과 윤리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며 의사조력자살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박수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말기암 환자 등의 고통이 극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간병서비스인 호스피스가 크게 낙후돼 있는 국내 현실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단체인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처장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0만 명당 46.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6배”라며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지 않으면 환자와 가족의 동반 자살, 간병 살인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착한법 만드는 사람들’ 대표)은 “식물 상태 환자의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병원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해 법적 다툼을 의뢰해온 경우가 많다”며 “의사조력자살 허용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했다.
안규백 의원은 2016년 윤영호 교수의 설문 때, 41.4%로 나온 안락사·의사조력자살 찬성률이 거의 2배 높아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인식 변화에도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설문의 적정성과 신뢰도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다. 응답자들이 이 사안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부작용 우려 vs “큰 문제 없을 것”
마지막으로 예상 가능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의사협회는 의사조력자살로 인해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행 연명의료 중단은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하는 것일 뿐 통증 완화를 의한 의료행위나 영양분·물 등의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임종을 앞당기는 의사조력자살도 그런 점에서 허용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정유석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은 “만약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하면 간병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저소득층 환자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이 존엄사란 이름으로 죽음을 강요당하는 ‘사회적 타살’을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 점, 현행 자살예방법과 입법 취지에서 충돌하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안 의원 등은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한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 특별히 생명 경시 풍조가 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또 말기 환자로 국한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만들면 큰 문제 없이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정 법안이 과연 그런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정안은 △말기 환자 △수용하기 우려운 고통 발생 △본인의 희망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심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하도록 했다. 조력자살을 도운 담당의사에게는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을 배제한다. 만약 담당의사가 돕기를 거부하면 해당 의료기관의 장이 담당의사를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거부한 의사를 해고하거나 다른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 법안의 주요 골자는 이게 전부다. 이 밖에 기록 보존, 정보유출 금지 등을 정하고 있지만, 절차와 요건이 간략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의사협회는 자살방조죄 면책이 된다고 해도 의사들이 윤리적 문제와 민사 문제에 시달릴 수 있는 문제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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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고 있는 돌봄서비스 문제
법 개정과 관련해선 찬반 양론이 갈리지만,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스템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큰 이견이 없다. 의료계에선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6년이 지나도록 호스피스 돌봄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질환이 5가지(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로 한정돼 있는 게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1년에 암으로 죽는 사람이 8만 명인데, 이 가운데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환자는 23%에 불과하다. 다른 질환까지 넓혀 보면 만성질환 사망자의 10%만 호스피스 혜택을 받는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의사조력자살 논의 이전에 존엄한 죽음을 위해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호스피스 시설 및 인력 확충,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 말기 환자로 호스피스 확대, 임종실 의무 설치 등에 정부와 국회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조력자살 합법화 이슈는 찬반 쪽 논리가 정연해 판단이 쉽지 않다. 우선은 사회적 논의가 좀 더 필요하고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의료계 주장에 공감이 간다. 제도가 실효성 있게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미리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놓지 않은 경우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평소 원했다는 사실을 가족 2인 이상이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 현장에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도록 하는 기존의 간단한 의료절차로 대체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반면, 말 못할 고통을 이어가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 사정을 들어보면 의사조력자살의 필요성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고귀한 죽음을 향한 공론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현재 법안만 발의됐을 뿐, 법안 심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오는 24일 열리는 관련 국회 토론회에 관심이 쏠린다. 해외 입법 사례 등과 비교해가며 관련 법제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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