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포장 금지법
대형마트 등에서 이미 생산된 제품을 다시 포장해 판매하는 걸 금지하는 법령(시행규칙)이다. 생활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다.
2020년 1월 말 공포해 당해년도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적발 시 제조사와 유통사에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하지만 시중의 무수한 제품과 포장 형태 중 어떤 것이 재포장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불투명해 반발이 커지자 환경부가 문제가 된 지침을 재검토한 뒤 2021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일정을 연기했다(2020년 6월 22일).
환경부가 1월 자원재활용법 하위법령으로 발표한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재포장금지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재포장, 다른 하나는 과대포장 관련 규제다. 과대포장 규제는 앞으로 환경부 계획대로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재포장 관련 규제다. 규제 내용이 시도때도 없이 바뀌면서 업계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공장에서부터 바코드가 찍혀 나오는 묶음할인 상품이 대표적이다. 1월 환경부는 업계의 질의 응답에서 “통상적으로 묶음 상태에 바코드가 표시된 판매 상품은 재포장이 아니다”며 “공장에서 박스째 출고되는 맥주 6캔, 12캔, 24캔 상자 등은 판매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관련 업계는 이후 별도 지침이 없어 할인판매용 박스 제품에 대해서는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 6월 3일 상황이 크게 변했다. 환경부가 재포장금지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업계와 처음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다. 환경부가 이날 내놓은 ‘앞으로 금지되는 재포장 묶음 사례’에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묶음 상품 대부분이 포함됐다. CJ제일제당 ‘맛밤 1박스’, 샘표 ‘연두 2묶음’, 농심 ‘신라면 용기면 1박스’, 동원F&B의 ‘동원참치 4개묶음’, 요구르트 묶음 제품, 하이트진로의 ‘맥주 6팩’, 각종 샴푸 등 세제 2개 세트 등이 사진으로 나열됐다. 이렇게 제품을 박스 형태로 할인 판매하면 제조사와 유통사 모두에 300만원씩 과태료를 물리는 ‘양벌제’를 적용한다고 했다. 할인 프로모션을 마케팅으로 시행해온 관행을 1개월 만에 싹 다 바꾸라는 얘기였다. 환경부는 18일 가이드라인 발표 때도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했다.
상품을 띠지로 묶어 ‘1+1’ 또는 ‘4+1’ 형태로 파는 행위에 대한 규제도 ‘왔다갔다’의 연속이었다. 1월에는 불허했다가 이달 3일 간담회에서는 “한시적으로 띠 묶음 판매는 인정한다”고 물러섰다. 그러다 6월 18일 가이드라인에서는 다시 안 된다고 못박았다.
포장 규제지만 가격 개입 아니다?
창고형 할인 매장에 대한 재포장 규제도 마찬가지다. 1월부터 불허 방침을 유지하다 18일 가이드라인 발표에선 규제 적용 예외 대상으로 뺐다. 온라인 채널의 재포장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못 하고 끝냈다.
환경부는 18일 가이드라인 발표 후 업계와 언론에서 이 같은 ‘갈지자 행보’와 가격 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할인에 관한 안내 문구를 매대에 표기하고 낱개 상품을 싸게 파는 것, 공장에서 나올 때 이미 묶여 나오는 대용량 포장 제품, 테이프 띠지로 둘둘 말아 할인하는 묶음 제품 등을 모두 허용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여전히 환경부가 시장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테이프로 둘둘 말아 묶음 할인하는 건 허용한다’는 방침과 관련해 “요구르트, 김, 캔 음료 등은 외부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띠 포장보다는 박스나 비닐로 재포장할 필요가 있다”며 “테이프로 묶어 팔면 식품 포장의 기본인 안전과 위생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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