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Man Booker Prize]1969년 영국 유통업체 부커가 제정한 문학상. 매년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 영국 연방국가 작가들이 영어로 쓴 영미 소설들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2005년 영연방 지역 이외 작가가 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했다. 이 부문은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외국 문학작품에 주는 상이다. 영화로 치면 미국 아카데미상의 외국어작품상에 해당된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의 특징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상을 준다는 것이다.
2016년 맨부커상 시상식에서는 한국소설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돼 소설가 한강 씨와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상을 수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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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한국소설 세계 문단에서 통했다
16일(현지시간) 밤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2016년 맨부커상 시상식. 보이드 턴킨 심사위원장(영국 인디펜던트 문학선임기자)이 “올해의 수상작은…”이라고 운을 뗀 뒤 연단 서랍에 있던 한국 소설 《채식주의자》를 꺼내들고 “바로 이 책입니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연단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소설가 한강 씨(46·오른쪽)는 옆에 앉은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와 포옹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씨가 수상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외국 문학작품에 주는 상이다. 한씨는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거장 옌롄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등 세계적인 경쟁자를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상금 5만파운드(약 8500만원)는 작가와 번역가가 나눠 가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제쳐 《채식주의자》는 2007년 출간된 한씨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한 여성이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극단적 채식을 하다 죽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영문판은 지난해 1월 나왔다. 턴킨 심사위원장은 수상작에 대해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며 “서정적인 동시에 날카로운 스타일의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어 “독자들의 마음속이나 꿈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한씨는 수상 소감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이 과연 완전히 결백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 작품”이라며 “내게 책을 쓰는 것은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독자들이 소설 읽기를 좀 다르게 생각해주면 좋겠다”며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 갖는 마음으로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의 특징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함께 상을 준다는 것.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스미스는 영국에서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를 이끌며 제3세계 문학을 영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한씨와 같은 세계적 수준의 작가가 있다는 걸 알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강 “동료·선후배 작가 지켜봐달라” 한씨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문학계는 일제히 환호했다. 한국문학이 세계로 나가는 문이 더 활짝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맨부커상은 ‘제2의 노벨문학상’인데 대단한 쾌거다. 한국 문학이 도약할 수 있는 커다란 발판, 도약대가 될 것”이라고 반겼다. 김 원장은 또 “한씨가 (수상작 후보에 올라) 뜨고 나서 해외 출판사에서 찾아와 다른 한국 작가는 누가 있느냐고 물어본다”고 말했다. 한씨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한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해외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선배가 길을 터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씨도 수상 후 인터뷰에서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을 지켜봐달라”고 했다. ○父 한승원 “가장 큰 효도 받은 셈” 서울예술대 문예학부 교수인 한씨는 시적인 문체와 독특하면서도 비극성을 띤 작품세계로 일찍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폭력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다. 문학평론가들은 한씨의 작품을 “상처를 응시하는 담담한 시선과 탄탄한 서사, 삶의 비극성에 대한 집요한 탐문이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소설문학상(1999), 이상문학상 대상(2005), 동리문학상(2010), 만해문학상(2014), 황순원문학상(2015) 등을 받았다. 한씨는 ‘문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원로 소설가 한승원 씨(77)가 아버지다. 한승원 씨는 “자식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것인데 이번에 큰 효도를 받았다”며 “한국문학도 한류처럼 문이 열려 세계로 알려지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 씨의 남편은 문학평론가인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다. 홍씨는 부인에 대해 “한 줄 한 줄 혼신을 다해 몸이 아플 만큼 쓰는 체질”이라고 설명했다. 오빠 한동림 씨 역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 맨부커상 1969년 영국 유통업체 부커가 제정한 문학상. 매년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 영국 연방국가 작가들이 영어로 쓴 영미 소설들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2005년 영연방 지역 이외 작가가 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했다. 소설가 한강 씨가 수상한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화로 치면 미국 아카데미상의 외국어작품상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201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