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사전

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

화폐의 액면가(디노미네이션)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 가령 10,000원권을 1,000원권이나 100원권 등 낮은 단위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 그릇에 7000원 하는 설렁탕 가격을 7원으로 표기하거나 달러당 네 자릿수대의 원화 환율을 두 자릿수대로 변경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보통 극심한 인플레로 인해 경제량을 화폐적으로 표현하는 숫자가 많아서 초래되는 국민들의 계산상, 지급상의 불편을 해소할 목적으로 실시된다. 물가, 임금, 채권채무 등 경제수량 간의 관계에는 변화가 없다. 실질적으로 화폐가치를 낮추는 평가절하(devaluation)와 달리 소득 물가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이론적으론 중립적이다.

특정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거래 편의 제고 △회계 기장 처리 간소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차단 △대외 위상 제고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화폐 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 주조비용 증가 △각종 교환비용 확대 등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은 과거 두 차례 있었다. 1953년 6·25전쟁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100원을 1환으로 바꿨다. 1962년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10환을 지금의 1원으로 바꿨다.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간간이 거론됐지만 물가 자극 등의 우려 때문에 없던 일이 되곤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필요성을 역설하며 힘을 보탰지만 부작용을 우려한 정부 부처의 반발이 커지자 논의가 중단됐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비용과 효과

2004년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했을 때 비용과 편익을 계산한 적이 있다. 당시 한은은 내부에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려 화폐개혁을 추진하다 물가상승 우려와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에 접었다. 당시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직접 비용은 2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새 화폐 발행 등 직접비용만 3兆 넘어

지금 쓰는 화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를 만드는 데만 3000억원이 든다고 봤다. 금융기관 간 결제시스템을 조정하고 기업과 은행의 내부 전산시스템을 수정하는 비용, 현금자동입출금기·자동판매기 등 교체 비용도 고려됐다. 여기에 주유기, 표 발매기, 승차권과 입장권, 금액이 적힌 각종 문서와 식당 차림판 등을 바꾸는 데도 돈이 든다. 이때 비용은 정부 예산과 민간 지출이 다 포함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업과 유통업, 운수업과 관광업 등이 특히 비용 부담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2019년 현재는 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2004~2018년 소비자물가만 1.37배 올랐다. 2조6000억원에 물가 상승분만 단순 대입해도 3조5600억원이 된다. 한은은 2004년 추산 때 물가상승 가능성과 경제 심리 불안 등에 따른 간접 비용은 감안하지 않았는데 이런 것을 다 고려하면 1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화폐개혁의 편익은 얼마나 될까. 한은은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제 효과가 10년간 5조원 정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종 금융 거래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계산과 지급, 기장의 편의성이 크게 향상돼 비용을 뛰어넘는 편익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 관계자는 “기계와 소프트웨어 교체 등으로 생기는 일자리와 소비 진작 효과, 한국의 대외 위상 제고 등까지 감안하면 편익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수경기가 부진할 경우에는 적지 않은 경기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화폐와 결제시스템, 기계 등 교체로 인한 비용은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데 비해 계산과 지급 등 편의성 향상으로 인한 편익은 불확실한 측면이 있어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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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잠잠했던 ‘리디노미네이션(화폐거래단위 축소)’ 논의가 지난주 한국은행 국정감사 때 나온 이주열 총재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즉각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부에서 ‘화폐개혁’으로까지 인식하는 이 논쟁이 불거짐에 따라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한국 경제가 더 어수선해지고 있다. 특정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거래편의 제고 △회계기장 간소화 △물가 기대심리 억제 △대외 위상 제고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의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 주조와 신·구권 교환비용 증가 등 단점도 만만치 않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한국 경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위상 간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면에서 우리는 선진국에 속한다. 국내총생산(GDP)으로 세계 11위, 무역액 8위, 수출액과 시가총액은 각각 7위다. ‘20K-50M(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높은 하드웨어 위상과 달리 부패지수, 지하경제 규모, 조세피난처에 숨겨 놓은 ‘검은돈’의 규모 등으로 평가되는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12월9일 ‘반(反)부패의 날’을 앞두고 발표하는 부패도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지난해 43위로 하드웨어 위상에 비해 부패가 심한 국가 중 한 곳으로 평가됐다. 한국처럼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에서는 요즘과 같은 대전환기에 쏠림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글로벌 시장 환경이 좋을 때는 선진국 대우를 받으면서 외국 자금이 대거 유입된다. 반면 상황이 나쁠 때는 불안한 신흥국으로 취급돼 들어왔던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른바 ‘샌드위치 쏠림 현상’이다. 한은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외형상 선진국 지위에 맞게 부패를 척결하고 화폐거래 단위를 변경해 쏠림 현상을 줄이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2000년 이후 각국은 신권을 발행했다. 미국은 20달러, 50달러, 100달러 지폐를 새롭게 도안했다. 일본은 20년 만에 1만엔, 5000엔, 1000엔짜리 신권을 발행했다. 신흥국도 앞다퉈 신권을 내놓았다. 각국 추진 사례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신권을 발행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해 기존 화폐를 완전히 대체했다. 다른 하나는 화폐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병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신흥국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결부시켜 신권을 발행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대외 위상 증가 등 리디노미네이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물가 상승과 부동산 투기 심화 등으로 경제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터키, 모잠비크, 짐바브웨가 그랬다. 2009년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북한도 실패했다. 법화(法貨·legal tender) 시대에 신권을 발행하는 것만큼 국민의 관심이 높은 일은 없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때는 더 그렇다. 특히 경제활동 비중이 높은 부자와 대기업의 저항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가 안정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신권을 발행하거나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선진국들은 이 전제조건이 성숙했는지를 중시했다. 반면 신흥국들은 위조지폐가 발견되거나 부정부패가 심하고 대규모 자금 이탈이 진행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급진적인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했다. 전제조건의 충족여부보다 상황 논리에 밀려 화폐정책을 논의하고 추진했다는 의미다. 이런 점이 선진국과 신흥국 간 리디노미네이션 정책의 성패를 갈랐다. 한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은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1962년 화폐개혁 이후 액면단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기업회계에선 조(兆)원, 금융시장에선 경(京)원까지 심심찮게 나온다. 원화 거래단위도 달러화의 1000분의 1로 여겨져 경제 위상과 맞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필요성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며 미국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금융불안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것은 물론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국민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될 때 논의하고 추진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해명이 따르긴 했지만 이 총재의 발언이 귓전에 계속 맴도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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