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사전

신의성실의 원칙

 

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 모든 법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 규범이다. 민법(2조)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1항)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2항)고 규정하고 있다.

줄여서 "신의칙"이라고도 한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은 “과거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 임금 수준 등을 결정했다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더라도 이전 임금을 새로 계산해 소급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재계는 신의칙이 언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법리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대법원조차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락가락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2019년 신의칙 적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던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에서 사실상 도산 위기가 아니면 신의칙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이에 반해 2020년 6월 코로나19 여파로 위기를 맞은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사건에선 신의칙을 적용했다. 이후 한국GM, 쌍용자동차에서 제기된 통상임금 소송에서 각각 “공적자금 8100억원을 지급받았다” “장기간 큰 폭의 적자로 회사 존립 자체가 위태롭다”는 점을 근거로 신의칙을 적용했다.

그러다가 2020년 8월 이후 판결을 내린 기아•금호타이어 등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또다시 신의칙을 부정했다. 대법원이 명확한 법리해석을 내놓지 않아 같은 사건을 두고 1, 2심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가 엇갈리는 일도 적지 않다.

2021년 12월에는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두고 벌어진 현대중공업 노사간의 소송에서 노동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모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재산정한 법정수당•퇴직금 등과 과거 지급분의 차액을 2012년 회사에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현대중공업 측은 재판 과정에서 신의칙을 내세워 반박했다. 신의칙은 ‘통상임금 소급분을 근로자에게 지급할 경우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된다면 이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경영 악화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해선 안 된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국내외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위험과 불이익은 기업이 예견하거나 부담해야 할 범위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기업 규모에 비춰봤을 때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간 이어진 현중 위기
현대중공업의 경영 상황은 유럽의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량 감소, 중국 경쟁사의 급격한 성장 등으로 2014~2015년 무렵부터 장기간 악화하는 추세였다. 여기에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현대중공업의 2020년 영업이익은 329억원에 머물렀다.

2021년 3분기까지 총 3200억원 수준의 적자를 냈다. 원심(항소심) 재판부가 “원고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미지급 법정수당의 추가 지급을 요구하는 것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며 사측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인 게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 측은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한번 법리를 다퉈볼 것이라는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따른 충당금은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각 계열사 재무제표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예측하는 통상임금 소급분 규모는 약 6000억~7000억원으로 실제 규모는 파기환송심 결과가 나온 뒤 확정될 예정이다.

재계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두고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오늘날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등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변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며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산업현장에 혼란과 갈등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호소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한 노동경제학자는 “법원이 법적 판단이 아니라 경영•재무적 판단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경제지표는 항목과 기간 설정에 따라 완전히 다른 통계나 결과가 나오는데, 경제전문가가 아닌 법관이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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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소급 청구를 제한하는 요건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 전원합의체를 구성했다.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법리를 제시한 이후에도 2년 가까이 혼란이 지속돼 대법원이 다시 나서기로 했다. 전원합의체에서는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재무 항목과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 등을 명확히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대법원, 또 전원합의체 구성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인천 시내버스 업체인 시영운수 소속 근로자 23명이 2013년 4월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의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최근 회부했다. 시영운수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다시 계산한 초과근로수당 등 미지급 부분을 소급해서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시영운수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해 임금을 확대하라는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된다”며 근로자의 추가 임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4월 상고장을 접수한 대법원은 4명으로 이뤄진 소부(小部)에 사건을 배정했다가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이관했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소부 내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또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 때 구성된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사건의 법리를 세우기 위해 2013년 8월 갑을오토텍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고, 그해 12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는 10월19일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최종 판결은 내년 상반기에 나올 전망이다. ◆하급심마다 신의칙 판단 엇갈려 대법원이 2013년 12월 판결에서 제시한 신의칙 적용 요건은 ①정기상여금에 관한 사건일 것 ②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가 있을 것 ③근로자의 소급 청구가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낳을 것 등이다. 이런 요건에 해당하면 신의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소급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태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대법원이 신의칙 요건을 내놨음에도 2년 가까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등 혼란이 지속되자 구체적인 법리를 내놓으려고 전원합의체를 구성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출, 순이익, 보유 현금 등 다양한 재무제표 항목 가운데 무엇을 주로 볼 것인지, 판단 시점은 언제로 볼 것인지 등 하급심마다 다르게 제시하고 있는 신의칙 판단 기준을 대법원이 이번에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급심에서는 순이익을 판단 지표로 삼은 사건에서도 구체적인 적용 항목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아시아나항공 사건에서 1심 법원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순이익을 냈기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을 부정(신의칙 적용 불가)했지만 2심에선 1998년 설립 이후 10여년간 누적 손실이 1조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신의칙을 적용했다. 경영 지표보다 기업의 실질 주체에 따라 신의칙 적용 여부를 결정한 사건도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와 광주도시철도공사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중앙·지방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공사는 예산 확대가 사기업보다 쉽다”며 신의칙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 기준도 매번 적용된 것은 아니다. 부산시가 사실상 주체인 부산교통공사 사건에서는 “공사의 손실이 커지면 실질적으로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근로자들의 청구를 인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민법 제2조). 대법원은 통상임금 사건에서 근로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강현우/양병훈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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